제목 한의사 조남훈의 독서일기 <1> 朱丹溪「格致餘論」①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5-05-06 16:12
주장 펴고 임상례…실증적 글쓰기의 전형 <1>
한의사 조남훈의 독서일기 <1> 朱丹溪「格致餘論」①
 
한의학을 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항상 공허감이 남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장정일처럼 <독서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고전을 읽는 의사들은 전 세계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을 읽는 효용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옛 분들께서 어려운 한자로 써 놓은 글이 모두 진리일 수도 없는데 말이다. 고전읽기는 한의학을 이루고 있는 이론들을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실제 임상에서 활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한의학 고전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고전에는 증상이나 병을 관찰한 기록과, 그런 증상이나 병을 가지고 관찰자가 생각한 사고(思考)의 기록이 있는데 이를 구별하자.

둘째, 고전의 원문만 볼 것이 아니라, 번역본을 최대한 활용하자. 번역본을 읽으면 글을 읽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글의 논리를 점검하는데 편한 면이 많다.

셋째, 고전에 쓰인 것을 절대 진리로 보지 말고, 저작 당시의 시대 상황과 지식을 고려하여 실증적이고 비판적으로 보자.

넷째, 고전에는 사고(思考) 기록이 아주 많다. 그중엔 너무 관념화된 것들이 간혹 있다. 이런 것들은 다시 한 번 심사 숙고하자.
임상적으로 경험이 짧고, 생각이 깊지 못해 잘못된 생각과 이로 인한 글도 있겠지만, 옛 분들의 글을 지금의 시대에 다시 한 번 재해석한 시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물론, 질책과 충고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준비가 돼 있다. 지면 관계상 독서일기의 일부를 발췌해서 게재하는 것에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格致餘論」


朱丹溪의 「格致餘論」
朱丹溪(朱震亨)의 저작은 본인이 직접 쓴 格致餘論, 局方發揮, 本草衍義補遺가 있고, 제자들이 공동 저작한 것으로는 金匱鉤玄, 丹溪心法, 丹溪手鏡, 脈因證治, 丹溪治法心要 등이 있다. 그중에서 格致餘論은 朱丹溪 이론의 정수가 모두 모여 있는 대표서이다.
책 이름(옛 유학자들은 의학을 의학자(한의사)의 格物致知의 일이라고 보았다고 서문에 나와 있듯이)에서 알 수 있듯이, 朱丹溪는 유학자였다. 논리 전개에 있어, 유학 서적에서 많은 인용을 하였고 유학적 논리를 많이 내세운다.

첫째, 단계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체질을 구별하여 진료했다.

둘째, 단계를 대부분 보음파라 알고 있고, 그래서 선생께서 음을 보하는 육미지황탕 계열의 약을 많이 썼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사물탕을 자주 이용했다.

셋째, 가장 인상적인 부분인데, 단계가 인삼을 다용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격치여론을 보지 않았다면, 과연 단계가 인삼을 사용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넷째, 제목에도 나오지만, 실증적 글쓰기의 전형을 이루었다. 주장을 펴고 꼭 임상례를 첨부했다. 어찌보면, 초기 임상논문의 형태는 아니었을까?

실제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飮食 色慾 箴 序’에서는 음식과 성욕에 관한 섭생 방법이 잘 기술돼 있다.
‘陽有餘陰不足論’에서는 이 책의 주제인 陽은 넘치고, 陰은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근거로 제시하는 논거가 직접적으로 陰이 부족한 것을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견강부회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張景岳보다는 덜 한 것 같다.

‘治病必求其本論’에서는 병의 근본을 찾아 치료하라고 했다. 임상례는 다음과 같다.
“30세 이웃사람, 素症과 습관은 간사하고, 조급했으며 원래 下疳瘡이 있어 발작했다가 멎었다가 하였다. 증상은 초여름에 自利에 걸려 膈上이 약간 답답하다고 하니 의사가 治中湯 2첩을 주었는데 혼미하고 답답하여 죽을 것 같았으나 잠깐 지나 소생하였다. 진단으로 양측 맥이 濇, 중하게 짚으니 弦하고 數하여 下疳瘡이 깊고 중한 것이다. 처방으로는 當歸龍薈丸에서 麝香을 빼고 4첩 주니 下利가 감소하였고, 小柴胡湯에 半夏를 빼고 黃蓮, 芍藥, 川芎, 生薑을 加味하여 5~6첩 주니 나았다고 하였다.”
이 임상례는 분명 熱이 많은 사람의 熱症狀에 뜨거운 藥을 사용해서 생긴 敗證을 치료한 예라고 할 수 있다.

‘濇脈論’에서는 濇脈이 虛寒 뿐만 아니라 熱病에서도 나타난다고 하였다. 임상례는 다음과 같다.
“이름 오자방. 나이 50세. 素症과 습관은 몸이 살졌으며 후미를 좋아하고 근심과 성냄이 잦았으며 맥이 항상 沈濇했으며, 증상으로는 봄부터 痰氣病, 의사가 虛寒이라 생각하여 燥熱香竄劑 사용, 4개월 사이에 두 다리가 약해지고 기가 상충하고 식사량이 줄었다. 진단은 熱鬱로 脾虛하여 痿厥證이 생긴 것이다. 처방으로는 竹瀝을 白朮膏에 가미하여 주었더니 2근에 기가 내리고 식사량이 늘었으나 1개월 후에 땀을 크게 내고 사망했다.”
아마도, 太陰人 肝熱證狀에 燥熱한 약을 사용하여 생긴 敗證에, 竹瀝과 같이 너무 완만한 약으로 조절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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